기원전 1세기~1948년
한국 도읍(수도) 변천
한반도 도읍은 위례성·국내성·서라벌에서 웅진·사비, 개경·강화, 한양(서울)으로 옮겨 갑니다.
기억할 요점
이 목록만 봐도 사실이 드러나도록 짧게 정리한 핵심입니다. 주제 이름만 나열하지 않습니다.
- 백제 한성(위례성)→웅진(공주)→사비(부여), 고구려 졸본·국내성→평양, 신라 서라벌(경주), 고려 개경(개성)·강화 천도·환도, 조선 한양(서울) 천도가 뼈대입니다
- 전쟁·남진·북진·방어·왕조 교체가 도읍 선택을 바꿨습니다
- 한반도 도읍은 위례성·국내성·서라벌에서 웅진·사비, 개경·강화, 한양(서울)으로 옮겨 갑니다
- 한양은 대한제국기 경운궁(덕수궁) 중심 운영, 일제 시기 경성 호칭과도 겹칩니다
백제 한성(위례성)→웅진(공주)→사비(부여), 고구려 졸본·국내성→평양, 신라 서라벌(경주), 고려 개경(개성)·강화 천도·환도, 조선 한양(서울) 천도가 뼈대입니다. 전쟁·남진·북진·방어·왕조 교체가 도읍 선택을 바꿨습니다. 한양은 대한제국기 경운궁(덕수궁) 중심 운영, 일제 시기 경성 호칭과도 겹칩니다.
백제 한성→웅진→사비, 고구려 졸본·국내성→평양, 신라 서라벌, 고려 개경·강화, 조선 한양으로 이어집니다. 전쟁·통일·외침이 도읍을 바꿨습니다.
나라·관련국·한국
한국 도읍(수도) 변천
삼국에서 현대 서울까지, 한반도 주요 도읍의 이동.
나라·관련국·한국
이 사건 안의 세부 연표입니다. 한눈에 보기에서는 「본사건만」으로 숨기거나 「세부 포함」으로 같이 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18년경
백제 위례성
한국
한강 유역 위례성을 초기 도읍으로 잡습니다.
온조 전승의 한성(하남 위례성) 도읍입니다. 475년 한성 함락 뒤 웅진·사비로 남하합니다.
3년
고구려 국내성
한국
압록강 유역 국내성이 장기간 중심이 됩니다.
초기 졸본에서 국내성(집안)으로 옮긴 뒤, 장수왕 대 427년 평양 천도까지 이어집니다.
기원전 57년~
신라 서라벌(경주)
한국
경주 일대가 신라의 도읍으로 유지됩니다.
신라의 도읍 서라벌(경주)입니다. 통일 후에도 금성·서라벌로 불리다가 고려 때 동경 등으로 위상이 바뀝니다.
427년
고구려 평양 천도
한국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깁니다.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합니다. 남진 정책과 맞물려 한반도 중부 진출의 거점이 됩니다.
475년
백제 웅진 천도
한국
한성 함락 뒤 공주(웅진)로 옮깁니다.
475년 한성 함락 뒤 백제가 공주(웅진)로 천도합니다. 재기를 도모하며 신라·고구려와 대치합니다.
538년
백제 사비 천도
한국
성왕이 부여(사비)로 도읍을 옮깁니다.
사비 시대 백제 문화·외교가 절정에 가깝습니다.
918년
고려 개경
한국
왕건이 개경(개성)을 도읍으로 고려를 엽니다.
서경(평양)을 중시하는 이도 논의도 이어집니다.
1232년
고려 강화 천도
한국
몽골 침입기 강화도로 임시 천도합니다.
장기 항전 거점이 되며 개경 환도까지 이어집니다.
1270년
개경 환도
한국
강화에서 개경으로 돌아옵니다.
원종 대에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합니다. 몽골과의 강화 이후 본래 수도 질서로 돌아갑니다.
1394년
조선 한양 천도
한국
태조가 한양(서울)으로 도읍을 옮깁니다.
경복궁·종묘·사직과 한양도성이 새 왕조의 공간을 만듭니다.
1897년
대한제국과 경운궁
한국
황제국 선포 뒤 경운궁(덕수궁)이 정치 중심이 됩니다.
도읍 한양은 유지되나, 대한제국기 법궁 역할이 경복궁에서 경운궁(덕수궁)으로 기운 시기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서울
한국
정부 수립과 함께 서울이 수도로 자리합니다.
일제 시기 「경성」 명칭에서 벗어난 뒤의 현대 수도입니다. 한국전쟁 중 부산 임시수도(1950~1953)도 있습니다.
당시 통치자
연도로 찾아보기카탈로그 왕조·가계에 재위 연도가 있는 통치자입니다. 사건 시점(또는 기간) 기준: -18–1948년목록은 미리 펼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만 눌러 보세요.